경기도 가볼만한곳 정약용 유적지 데이트
남양주 마재 마을에 조선시대 최고 실학자 정약용(1762~1836) 태어나고 생을 마감한 곳으로
선생의 생가인 “여유당”이 있고 묘와 사당도 있어는 이곳을 다녀왔어요
운영 및 관람안내
입장료 : 무료 ( Free)
09:00~18:00(관람종료 30분 전 입장)
휴관:매주 월요일,1월1일 설날 및 추석당일
주차장
무료 (free)
정약용 유적지 입구 바로 앞쪽에 위치해 있으면 주차장이 넓으나
만차시에는 주변에 공용 주차장이 있어서 주차를 걱정 안해도 됨
대중교통
운길산역 하차 ->58번 버스 환승 ->다산정약용유적지 하차
해리포터 영화 속 버스와 같은 붕붕이를 타고 바로 출입구 앞까지!
위치정보 –> https://naver.me/GLSMzkF6
문화관
입구 초입에 왼쪽 건물로 문화관이 자리 잡고 있는 곳
정약용 선생을 현대적으로 시각으로 작품이 전시 되어있다고 했으나 지금은 ‘준비 중’ 이고
앞쪽 자판기에서 구쯔 판매하는 자판기 발견!
거중기 발명 ! 사실 장영실이 발명한 줄 알고 있었음
1792년(정조16) 다산 정약용이 서양의 기술과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하여
창의적으로 만든 기구로 높이 4.4m 너비는 1.7m이다 “기기도설”을 연구한 다산 정약용이
골차로 거중기를 만들어 수원성을 쌓는 사업을 지휘하면서 직접 만든 것으로
거중기를 이용하여 노동자 두 사람이 약 10톤 또는 그 이상의 무거운 자재를 높은 곳으로
운반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수원산성 축조에 사용 하였으며
다산선생의 과학사상과 앞선 시대 정신을 볼 수 있다
기념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업적과 자취를 전시하였는데 그 중 7살에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니 멀고 가까움이 달라서라네”
라는 시를 써서 아버지에게 칭찬을 받았다고 하며
7살에 꼬마가 그런 시를 지을수 있을까?! 정말 대단하다
여유당
선생의 생가이며 평소 검소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
정약용 선생 6대 후손인 ‘정해인’ 배우가 목소리 재능 기부로 오디오 가이드 제작에 참여 했다고 한다
인성 좋기로 유명한 배우인데 역시 정약용선생의 후손이라 무언가 다름
정약용선생묘
여유당 뒷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정약용 선생의 묘가 있다 소나무도 드리운 곳에
몇 백전 세월에 존경의 마음으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 드린 곳
실학박물관에서 ‘조선비쥬얼‘ 특별 전시회
<조선비쥬얼>은 ‘의관정제’에 필요한 다양한 남자 장신구를 한자리에 소개하는 전시인데요
국가민속문화재인 능창대군과 영친왕 망건을 비롯하여 구슬 갓끈, 귀걸이,선추 등 꾸밈에 해당하는
장신구 100점 전시 하고 있어요
꾸밈이라는게 여자들 한테만 국한 되어 있을꺼란 편견을 깼던 전시였어요!
남자들도 한껏 꾸밀수 있는 장신구들이 무한히 많더라구요
1층 안내 데스크 뒷편에 물품보관함 있어서 가방을 넣어 둘수도 있구요 열수홀(강당)옆에
지금 목판 체험공간이 있었서 만들어 봤어요
1부 남자의 꾸밈과 멋
⌈건정동필담⌋에서 실학자 홍대용은 “이른 새벽에 일어나 날마다 머리를 빗는다.”라고 했다.
선비는 새벽에 일어나 머리를 손질한 후 상투를 틀고 망건을 착용해 정갈한 모습으로
마음가짐을 바르게 하자고 하였다 상투는 성이 되었나는 표시로 성인식, 결혼식과 같은
큰 의례를 통하여 긴 머리를 정수에 동여매고, 모자를 쓰는 매우 중요한 의식으로부터 시작 된다.
당시에는 상투가 없으면 결혼도, 관직도 얻을수 없다. 19세기 러시아 사람은 “남자들의 생활에서
상투는 가장 중요하고 신성하며 위대한 것은 모두 상투와 관련 있었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상투는 때론 남자를 통제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었다.
선교사 윌리엄 베어드 갓
1897년 평양에 숭실대학을 설립한 선교사 윌리엄 베어드가 사용한 갓 이다.
19세기 전반에 유행하던 갓 형태로 19세기 말까지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권기수 초상
권기수의 63세 초상이다.의복의 간소화로 작아진 갓에 구슬 갓끈을 달고
복숭아 모양 단추를 달고 세조대를 걸쳐 매었다.
오른손에는 선주다 달린 ‘쥘부채’를 들고 왼손에는 안경을 쥐고있다.
2부 하루의 시작: 상투를 틀고,망건 조이면 꾸밈의 반
조선시대 남자들은 왜 망건 착용에 많은 공을 들였을까?
망건을 아주 세게 졸라매면 머리둘레에 깊이 자국이 생기지만
망건을 단단하게 고정해야 정갈하고 단정함은 물론 훤칠한 이마와
치켜 올라간 눈썹으로 인하여 착용자의 인상을 많이 달지게 하는 효가가 있기 때문이다.
동곳 – 상투 꼭대기에 꽂는 상투 비녀이다
망건은 능착대군 무덤에서 출토된 망건으로 19세기 이전 왕실 망건을 실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며 색이 다른 말총에 섬세한 기하무늬를 넣어 만들어 공예미가 돋보이는
수작으로 손꼽을 만하다
금자관는 관자는 망건에 달아 망건 줄을 걸어 조일 때 쓰는 실용적인 장치로
재료에 따라 신분을 상징한다. 금관자는 2품용이다.
3부 꾸밈의 완성: 쓰고, 걸고, 매고,신고
머리장식, 몸장식, 신발을 살펴 볼 수 있으며 장신구 각각의 용도와 독특한 예술성을 살펴볼 수 있다.
남자의 귀걸이는 상류층 남자의 필수적인 장식이었으나 오랑캐의 풍습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선조의 명이 있은 후 조선에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안경은 선조 14년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왔다.
남들 앞에서 안경 쓰는 걸을 어렵게 생각하였으며 19세기 중반이 되어야 점차일반화 되어 갔다.
장도는 휴대용 작은 칼로 칼집 안에 칼과 젓가락을 함께 넣어 비상시 실용적으로 사용했다.
부채는 접었다 폈다는 하는 접선으로 선비들은 밖에 나갈 때 항상 쥐고 다닌다고 하여
‘쥘부채’라고도 하며 부채 끝에 무늬를 넣어 조각한 나무 선추를 걸었다.
4주 꾸밈의 상징: 신분! 척 보면 알아요
관리의 ‘관복’과 학자의 ‘신의’를 통하여 각각의 구성품들의 특징을 살펴 볼 수 있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려입은 정장이 신분을 나타내는 동시에 착용자의
몸과 마음가짐을 바르게 함에 있다는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허전 초상화 이며 심의 착용 모습니다. 심의는 학자의 예복으로
‘치포관’을 쓰고 넓은 띠를 매었으며,발막신 형태의 검은색 신을 신고있다
김석주 초상화이며 의례용 관복을 착용한 모습이다.
문관 당상관을 상징하는 구름무늬가 있는 흑단령에 ‘운학흉배’가 있으며
띠는 1품용 서대를 매었다.
경기도가볼만한곳 정약용 유적지 데이트
극 I 성격인 제가 다녀온 곳 중 정말 만족스러운 장소
데이트하기에도 손색이 없고 아이와 함께 와도 정말 좋은 곳이며 박물관 구경 후
다산 정약용 생태공원 산책은 필수 코스일듯 ❗